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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ise of Soju 燒酒: The Transfer of Distillation Technology from ‘China’ to Korea during the Mongol Period (1206–1368)

Hyunhee PARK

Abstract


The paper re-examines the rise of soju at the end of the Koryŏ period, which marked a new era in Korean drinking history from the perspective of distillation-technology transfer in Eurasia during the Mongol period. By comparing it with earlier traditional Korean alcoholic drinks, the paper shows how soju was distinctive and new. Yet sources do not clearly say when and how soju spread to and in Koryŏ at that time. That is why many different theories have competed for pre­eminence. By reviewing earlier theories and also examining the most re­cent studies done in different languages and new archaeological findings, the pa­per proposes the following provisional conclusion. First, distillation developed independently in China. Yet it was the Mongols who adopted distillation technology from other cultures such as China to make distilled alcohols using mare’s milk drink that they enjoyed, and named it arakhi, a foreign word from West Asia that migrated through overland and sea routes, and popularized it in large parts of Eurasia including China and Korea under the Mongol influence in the course of mobilizing goods and people including soldiers and merchants. Merchants from different societies active in the international trades that travelled along the expanded trade routes of the time probably accelerated the transfer pro­cesses. The case of Korea, where soju became popular right after the coming of the Mongols, is supported by a good number of documents and historical con­texts. That some Mongol soldiers recruited to Korean army camps were pos­sibly from craftsmen families who were able to introduce distillation technology suggests a quite likely scenario. While we cannot deny the possibility that soju was transferred earlier from China to Korea, no evidence supports this so far. Available pieces of evidence all clearly say that distilled alcohol spread widely only after it was transferred from China to Korea during the late Koryŏ period.

The case of soju transfer clearly shows that a big cultural influence could occur through exceptional historical changes. Unlike some foreign alcoholic drinks, which transferred beyond their cultural zone as tribute, and then spread very slowly among kings and nobles, soju spread quickly for a short period of time under unprecedented historical conditions, such as “Korea’s close connection to wider parts of Eurasia” through the Mongol empire. It is furthermore intriguing as it involves a transfer of technological knowledge. The story of soju’s rise in Korea is a good example of the rise of a new cultural element based on tradition and innovation, involving both adaptation and localization of new technologies.

朴賢熙,“燒酒的崛起:蒙古時代 (1206–1368) 蒸餾技術從 ‘中國’ 向韓國轉移

本文重新考察了高麗晚期燒酒的興起,這標誌著從蒙古時期歐亞大陸蒸餾技術轉移的角度來看,韓國飲酒史上的一個新時代。通過與早期傳統的韓國酒精飲料相比,本文展示了燒酒為什麼獨特而新穎。然而,文獻來源沒有清楚說明在什麼時候,以及如何傳播到當時的高麗。這就是為什麼許多不同的理論產生爭鳴,以求佔先。通過回顧以往的理論,並檢查用不同的語言并根據新的考古發現所作出的最新研究,本文提出以下初步結論。首先,蒸餾在中國獨立發展。然而,蒙古人採用了其他文化的蒸餾技術,比如中國,并使用他們喜歡的母馬的牛奶飲料來製造蒸餾酒,並命名為 arakhi,這個外國詞從西亞通過陸地和海洋路線遷移,並通過貨物和人民包括士兵和商人的流動,在大部分歐亞大陸流行開來,包括在蒙古影響下的中國和韓國。來自不同社會的商人沿著當時擴展的貿易路線行進,活躍在國際貿易中,可能加速了轉移過程。韓國的情況是,許多文件和歷史背景支持這種論點,即在蒙古人來之後,燒酒變得流行。一些被征招到韓國軍營的蒙古士兵,可能來自能夠引進蒸餾技術的工匠家庭,這種情況是相當可能的。雖然我們不能否認酵母早些時候從中國轉移到韓國的可能性,但迄今沒有證據支持這一點。可獲得的證據都清楚地表明,蒸餾酒僅在晚期高麗時期從中國轉移到韓國後才廣泛傳播。

燒酒轉移的情況清楚地表明,特殊的歷史變化可能發生大的文化影響。 一些外國的酒精飲料是作為貢品轉移出他們的文化區域的,然後在國王和貴族之間傳播非常緩慢,燒酒不同於這些酒精飲料,它在短暫的時間內,在前所未有的歷史條件下迅速傳播,例如通過蒙古帝國“韓國與歐亞大部分地區的密切聯繫 ”。 令人感興趣的是,它涉及技術知識的轉移。 韓國燒酒興起的故事,是一個基於傳統和創新的新文化元素崛起的好例子,涉及新技術的適應和本地化。

朴贤熙,“烧酒的崛起:蒙古时代 (1206–1368) 蒸馏技术从 ‘中国’ 向韩国转移”

本文重新考察了高丽晚期烧酒的兴起,这标志着从蒙古时期欧亚大陆蒸馏技术转移的角度来看,韩国饮酒史上的一个新时代。通过与早期传统的韩国酒精饮料相比,本文展示了烧酒为什么独特而新颖。然而,文献来源没有清楚说明在什么时候,以及如何传播到当时的高丽。这就是为什么许多不同的理论产生争鸣,以求占先。通过回顾以往的理论,并检查用不同的语言并根据新的考古发现所作出的最新研究,本文提出以下初步结论。首先,蒸馏在中国独立发展。然而,蒙古人采用了其他文化的蒸馏技术,比如中国,并使用他们喜欢的母马的牛奶饮料来制造蒸馏酒,并命名为 arakhi,这个外国词从西亚通过陆地和海洋路线迁移,并通过货物和人民包括士兵和商人的流动,在大部分欧亚大陆流行开来,包括在蒙古影响下的中国和韩国。来自不同社会的商人沿着当时扩展的贸易路线行进,活跃在国际贸易中,可能加速了转移过程。韩国的情况是,许多文件和历史背景支持这种论点,即在蒙古人来之后,烧酒变得流行。一些被征招到韩国军营的蒙古士兵,可能来自能够引进蒸馏技术的工匠家庭,这种情况是相当可能的。虽然我们不能否认酵母早些时候从中国转移到韩国的可能性,但迄今没有证据支持这一点。可获得的证据都清楚地表明,蒸馏酒仅在晚期高丽时期从中国转移到韩国后才广泛传播。

烧酒转移的情况清楚地表明,特殊的历史变化可能发生大的文化影响。一些外国的酒精饮料是作为贡品转移出他们的文化区域的,然后在国王和贵族之间传播非常缓慢,烧酒不同于这些酒精饮料,它在短暂的时间内,在前所未有的历史条件下迅速传播,例如通过蒙古帝国“韩国与欧亚大部分地区的密切联系”。令人感兴趣的是,它涉及技术知识的转移。韩国烧酒兴起的故事,是一个基于传统和创新的新文化元素崛起的好例子,涉及新技术的适应和本地化。

Hyunhee Park、 “燒酒の興起:モンゴル時期 (1206–1368) における “中国”から韓国へ蒸留技術伝播”

本論考は、高麗末の焼酎 soju の興起を論ずる。焼酎の出現は、モンゴル時代のユーラシアにおいて、蒸留技術の伝播という観点からみて、韓国の飲酒の歴史に新しい時代をもたらしたのである。焼酎と以前からあった韓国の伝統酒とを比較することにより、本論考は、いかに韓国の焼酎が独特で新しいものであったかを論ずる。しかしながら、その当時、焼酎がいつ如何にして高麗に広がっていったかを、資料は、はっきりと語っていない。それが故に、異なる理論が、多く提出されているのである。本論考では、すでに唱えられた理論、他の言語や新しい考古学的な発見をベースにして成された新しい研究を検討しながら、次に示すような暫定的な結論を提出する。まず、蒸留技術は、中国において、単独に発展した。しかし、この蒸留技術というものを、中国や他の文化圏から受け入れて、適用し、自分たちが飲んでいた雌馬の乳を用い、陸路や海路を通って到来した西アジアの起源の外来語 arakhi という名前を付け、これをモンゴルの影響下にある中国と朝鮮半島を含むユーラシアの広い地域で物流・交易や軍人、商人を含む人的資源を動員する過程で、この焼酎を普及させたのは、まさにモンゴルなのである。当時の拡大されつつあった交易路を通じて、国際貿易に従事していたさまざまな社会から来て活躍していた商人が、おそらくこの伝播プロセスを加速したのである。モンゴルの到来直後に、焼酎が急速に広まった韓国の事例は、多くの記録史料と歴史的な状況証拠によって裏付けられる。韓国内に設立された兵站補給基地運営のために徴用されたモンゴルの兵士の中に、おそらく手工業家の出身がいて、そのかれらが蒸留技術を伝えたという事は、可能なシナリオなのである。モンゴル時期以前に、既に焼酎が中国から韓国に入ってきた可能性は否定できないが、これを立証できる具体的な証拠がない。利用可能な資料すべては、蒸留酒が高麗後期に中国から韓国に導入された後に急速に拡がったことを明らかに示しているのである。

焼酎の伝来という歴史的な事例は、驚愕すべき歴史的変化を通じて、大きな文化的影響が発生する可能性があることを明らかに示しているのである。他の文化圏から貢物としてもたらされ、とてもゆくっりと王族や貴族の間で広まる外国のアルコール飲料とは違って、焼酎は、モンゴル帝国を通じて、「韓国は、更に広大なユーラシアへの緊密につながっている」という、前例のない歴史的文脈の中で、非常にすばやく広がっていったのである。この焼酎の出現ということは、技術的な知識の伝播と関連しているために、さらに重要なのである。韓国における焼酎の出現という歴史的な逸話は、新しい技術の適用・採用と地域化を含み、すなわち伝統と革新の両方をベースにした新たな文化要素の出現を示す好例なのである。

Hyunhee Park, “燒酒의 흥기: 몽골 시기 (1206–1368) ‘중국’ 에서 한반도에로 증류 기술 (蒸留技術) 의 전파”

본고는 한국의 전통주 역사에 큰 획을 그은 고려 말의 소주의 흥기를 몽골 시기 유라시아의 증류 기술의 전파라는 세계사적 시각으로 재조명함을 목표로 한다. 먼저 소주를 이전의 한국의 전통주와 비교함으로써 한국 주류사에서 고려 (高麗) 말에 새롭게 등장한 소주가 어떻게 새롭고 독특했는지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사료들은 소주가 언제 어떻게 고려시기에 보급되었는지를 분명히 밝히고 있지 않다. 이 때문에 이에 대한 많은 설들이 있었다. 본고는 이전 학자들의 설을 재검토하고, 다른 언어로 출판된 최근 연구들과 새로운 고고학적 발견도 검토함으로써, 본고는 다음과 같은 임시 결론을 내리고자 한다. 첫째, 증류법은 중국에서 독립적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몽골인들이 중국과 같은 다른 문화권으로부터 증류 기술을 받아들여서 이를 자신들이 즐기던 마유 음료를 사용해서 증류주를 만들고, 육로나 해로를 통해서 서아시아 등지에서 기원해 온 외래어 아라키라는 이름을 붙이고, 이를 몽골 영향 하에 있는 중국과 한반도를 포함한 유라시아의 넓은 지역에서 교역품과 군인, 상인을 포함한 인적자원을 동원하는 과정에서 이 소주를 보급시켰다. 당시 확대된 교역로의 국제 교역에 종사하던 여러 사회에서 온 상인들이 아마도 이 전파 과정을 가속화했을 것이다. 몽골의 도래 직후 소주가 퍼지게 된 한국의 경우는 많은 문서 사료와 역사적 정황증거에 의해서 뒷받침된다. 고려의 병참기지에 징발된 몽골 군인들 중 수공업자 집안 출신인들이 증류 기술을 전파했을 가능성은 가능한 시나리오이다. 몽골 시기 전에 이미 소주가 중국에서 한국으로 들어왔을 가능성은 부인할 수 없지만 이를 입증한 구체적인 증거가 없다. 이용 가능한 모든 사료들은 증류주가 고려 후기에 중국에서 한국으로 도입된 후에 급속히 확산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소주의 전래는 분명 특수한 역사적 변화와 더불어 큰 문화적 영향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이는 사례이다. 공물로 전해져서 왕과 귀족들 사이에서 천천히 퍼진 다른 몇몇 외래주와 달리, 소주는 몽골시기의 유라시아에의 연결이라는 전례 없는 역사적 맥락 속에서 빠른 시일 내에 전파되었다. 이는 기술 지식의 전파를 동반하기 때문에 더 흥미를 자아낸다. 한국에서의 소주의 흥기의 일화는 새로운 기술의 채택과 지역화를 아우르는, 즉 전통과 혁신을 모두 기반으로 한 새로운 문화요소의 흥기의 예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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