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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ngking Gulf under Reconquest? Maritime Interaction Between China and Vietnam Before and After the Diplomatic Crisis in the Sixteenth Century

Takeshi YAMAZAKI

Abstract


In 1541, Mạc Đăng Dung莫登庸(1483?–1541), the usurper of Vietnamese throne appeared at the border gate to Ming China and expressed his subjugation to the Chinese authority. The following year, his grandson Mạc Phúc Hải 莫福海 (1541–1546) was officially recognized by China as legitimate ruler of Vietnam. Modern Japanese and Chinese scholars have already traced back the prolonged dispute among the Ming emperor and officials precedent to this political decision, as to whether Ming China should give a punitive attack upon this usurped realm or not. The argument is deeply concerned with the pride and dignity of the Chinese emperor, who was considered responsible for the legitimacy of his vassal tributary kings. However, it may lead to serious misunderstanding if taking the tributary relations as a literally substantial constitution for international relations in pre-modern East and Southeast Asia. This study endeavors to illustrate what was going on as grass-root relations between China and Vietnam behind the court dispute, especially in terms of maritime interactions. For this purpose, the author thoroughly investigated some individuals and their writings concerned with this issue, such as Lin Xiyuan 林希元 (c. 1480–c. 1560) and Wu Pu吳朴 (?–?), contemporary Chinese literati. The former stubbornly insisted on the expedition and approached the emperor proposing strategic opinions, while the latter distanced himself from the political dispute but rather advocated promoting commercial relations with Vietnam. Though their standpoints appear to be inconsistent with each other, in fact, they both came from neighboring prefectures in southern Fujian, and were certainly intimate friends. Their policy mutually overlapped in a form, from which we can perceive the amorphous maritime interaction taking place between China and Vietnam, and thereby, a specific Chinese perspective on it, which is also related to Lin’s and Wu’s southern Fujian origin.

山崎岳,“奪回東京灣:十六世紀外交危機前後中越之间的海上交往”

1541年,越南僭位者莫登庸(1483?–1541)出現在明帝國的邊關,表達了他對中國威權的順服。次年,他的孫子莫福海(1541–1546)被明王廷官方認可為合法的越南統治者。現代日本與中國學者已經厘清了該項政治決定之前,明帝國皇帝與官僚之間長時間的辯論,即明王朝是否應該對這個僭主王國給予懲罰性的攻擊。這個問題事關中國皇帝的尊嚴,因為他被認為有責任和權力認定或否決其屬國國王的合法性。然而,如果將朝貢關係理解為實實在在的前現代東亞與東南亞國際關係,則會造成嚴重的誤解。本項研究致力於說明在朝廷辯論背後,中國與越南的民間草根性質的關係,特別是海洋關係。為此,作者研究了一些與該問題有關的個人及他們的著作,比如林希元(c. 1480–c. 1560)和吳朴(?–?), 他們都是當時的中國文人。前者頑固堅持遠征,并接近皇帝提出戰略意見,而後者則遠離政治辯論,而主張促進與越南的貿易活動。儘管他們的立足點似乎互相對立,但事實上,他們都來自閩南的鄰縣,而且二人肯定是親近的好朋友。他們的政策在某種形式上有重疊的部份,從這個部份我們可以察覺到中越之間無形的海上交往。同時,也可以觀察到對這個現象的中國視角,而這又與閩南地方性相關。

山崎岳,“奪回東京灣:十六世紀外交危機前後中越之间的海上交往”

1541年,越南僭位者莫登庸(1483?–1541)出现在明帝国的边关,表达了他对中国威权的顺服。次年,他的孙子莫福海(1541–1546)被明王廷官方认可为合法的越南统治者。现代日本与中国学者已经厘清了该项政治决定之前,明帝国皇帝与官僚之间长时间的辩论,即明王朝是否应该对这个僭主王国给予惩罚性的攻击。这个问题事关中国皇帝的尊严,因为他被认为有责任和权力认定或否决其属国国王的合法性。然而,如果将朝贡关系理解为实实在在的前现代东亚与东南亚国际关系,则会造成严重的误解。本项研究致力于说明在朝廷辩论背后,中国与越南的民间草根性质的关系,特别是海洋关系。为此,作者研究了一些与该问题有关的个人及他们的著作,比如林希元(c. 1480–c. 1560)和和吴朴(?–-?), 他们都是当时的中国文人。前者顽固坚持远征,并接近皇帝提出战略意见,而后者则远离政治辩论,而主张促进与越南的贸易活动。尽管他们的立足点似乎互相对立,但事实上,他们都来自闽南的邻县,而且二人肯定是亲近的好朋友。他们的政策在某种形式上有重叠的部份,从这个部份我们可以察觉到中越之间无形的海上交往。同时,也可以观察到对这个现象的中国视角,而这又与闽南地方性相关。

“トンキン湾再征服?:16 世紀の外交危機前後の中国・ヴェトナム間の海上交流について”

1541年、ベトナム国王の簒奪者であるMạc Đăng Dung莫登庸 (1483?–1541)が、明朝中国との関門に現れ、中国への服従を表明した。翌年、彼の孫Mạc Phúc Hải 莫福海 (?–1546)は、中国によって、正式にベトナムの正当な支配者として認められた。現代の日本と中国の学者は、明皇帝と高官たちの間にあった長く続いた論議、すなわち、明朝中国は簒奪した政権へ、懲罰攻撃をするか否かと言う論議を、すでに、明らかにしてきた。この議論は、中国の皇帝の誇りと尊厳に深くかかわるものだからである、つまり、中国皇帝は、自分の属国の王たちの正統性に責任があると考えられてきたからである。しかしながら、朝貢関係を、前近代東アジアと東南アジアの国際関係における文字通りの影響力のある規定と見なすならば、それは重大な誤解につながる可能性がでて来るのである。本論考は、特に海上交流の観点から、上記の宮廷での論争の背後にある中国とベトナムの間の根本関係関係に何が起きていたのかを説明する。この目的のために、本論考の著者は、林希元 (c. 1480-c. 1560) と吳朴(?–?)などの当時の中国の文人たちが、個人的に書き残したものを調査した。林希元は、頑なに遠征を主張し、戦略的な意見を提案して、皇帝に近づいた。一方、吳朴は、政治的な論争から離れた立場に立ち、ベトナムとの商業貿易の促進した。彼らの立場が互いに反対のように見えるものの、実際には、彼ら両者ともに、どちらも南部福建省の隣り合った県の出身で、親密な友人だった。つまり、彼らの政策は互に、中国とベトナム間で行われている漠然とした海上交流を認識している点と、そして、南部福建省出身という地元性が、中国とベトナムに関する中国特有の見解を二人とも共有しているという点を我々は理解するのである。

“통킹만의 再征服?: 16 세기의 외교 위기 전후의 중국-베트남 간의 해상교류에 관하여”

1541년에 베트남의 왕위 찬탈자인 Mạc Đăng Dung (莫登庸; 1483?–1541)이 명대 중국의 국경에 나타나 중국 정부에 복속할 의사를 표시했다. 이듬해 그의 손자 Mạc Phúc Hải (莫福海; ?–1546)는 중국에 의해 공식적으로 베트남의 정당한 통치자로서 인정 받았다. 현대의 일본과 중국의 학자들은 명나라 황제와 고관들 사이에서 찬탈한 정권에 대한 징벌적 공격 여부에 대해 오랫 동안 토론해 온 바를 지속적으로 검토해 왔다. 이 논쟁은 속국 왕들에게 정통성을 부여하는 중국 황제의 자존과 품위에 깊이 관계된 것이다. 그러나 조공 관계를 전근대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국제 관계에서 실제로 영향력 있는 관행으로 간주하는 것은 이 논의에 대한 심각한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 본고는 위에 언급한 궁정에서 벌어진 논쟁의 배후에 중국과 베트남 사이의 근본적 관계 관계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지를 특히 해상 교류의 관점에서 설명한다. 이를 위해 본고의 저자는 임희원(林希元; c. 1480-c. 1560)과 오박(吳朴; ?–?) 등의 당시 중국의 문인들이 이 문제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기록한 것을 검토했다. 임희원은 막무가내로 원정을 주장했고, 전략적인 의견을 제안하며 황제에게 접근했다. 한편, 오박은 정치적 논쟁에서 떨어진 입장에 서서, 베트남과의 상업적 무역을 촉진할 것을 옹호했다. 그들의 입장이 서로 정반대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두 사람 모두 남부 복건성의 인접한 현 출신으로, 친밀한 친구였다. 즉, 그들의 정책은 서로 중국과 베트남간에 이루어지고 있는 막연한 해상 교류를 인식하고 있는 점과, 그리고 남부 복건성 출신이라는 지역성을 바탕에서 이루어진 중국과 베트남에 대한 중국 특유의 견해를 두 사람 모두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치하고 있다.

Keywords: Ming China, Sino-Vietnamese Relations, Lin Xiyuan, Wu Pu, Southern Fuj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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